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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리사회
    Entertain contents/책 2019. 1. 20. 14:59

    삼성 바이오로직스 사태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한국거래소는 금융감독권 등 관련 기관의 분식회계 판결에도 불구, 상장재개를 허락했다. 한국거래소 내부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 외부의 압박은 불합리를 합리로 만들기에 충분했나보다. 신기한 건, 삼성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대리인을 통해 판을 뒤흔드는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리사회의 최종보스가 삼성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대리사회의 저자 김민섭님은 지방대 시간강사일을 하던 도중 그 열악한 처우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학교 밖에 문제를 제기한다. 자신을 지지할거라 믿었던 동료들이 본인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난 후 미련없이 학교를 나와 노동 현장으로 뛰어든다. 그는 새로 일하게 된 패스트푸드에서 노동자를 대우해주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지성의 보고라 일컬어지는 대학교 보다 우리가 쉬이 여기는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일하는 사람으로서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는다. 


    이를 기점으로 그는 '육체노동하는 작가'로의 전직을 결심한다. 밤에는 대리기사로 운전을 해 돈을 벌고, 낮에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대리기사를 하며 느낀 노동에 대한 현실, 그리고 감상을 여과없이 기록해낸 것이 '대리사회'라는 책이다. 업무 중에는 신체, 언어, 사유가 통제되며 상대방의 표현에 의해 자신이 새롭게 정의될 수밖에 없는 현장의 노동에 대한 고충을 섬세하고 깊이 있게 써내려간 부분이 와 닿았다.


    어떤이들은 세상이 이렇게 편해질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고려할 것은 '돈'이 많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물론 편할 것이다. 돈으로 자신의 시간을 살 수 있고, 몸이 힘든 것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파생되는 많은 '대리노동자'들은 그 매개인 돈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몸을 써야 한다. 상대적 박탈감, 불평등은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대기업의 노동 하청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 무수한 산업재해들, 그로 인한 유가족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대기업은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본인들의 위험을 외주화 하여 맡긴 대리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 따위는 져버린 채 말이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처럼, 대기업의 발전은 더 이상 소시민들의 발전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들이 돈을 버는 주요한 경로 중 하나는 힘 없고 가난한 자들의 대리노동을 통한 착취에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낙수효과를 적절한 경제정책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 인생은 어쩌면 모두 '대리하는 삶'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고, 어디론가 향하는 것이 우리의 진짜 욕망에 의한 것인지 돌아봐야 한다는 뜻으로 읽혔다. 내가 늘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한 번 더 말하기를, 한 발짝 물러나서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했다. 대리하는 삶을 살 것인지, 내가 진정한 주체가 되는 삶을 살 것인지를 말이다. 


    인상깊었던 문장은 본인이 많은 시간 몸 담았던 대학이 아니더라도, 바깥에서 '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좀 더 수준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 유학을 가고 싶은 생각을 늘 했던 나에게 주는 교훈이기도 했다. 결국 배움이라는 것은 내가 사는 삶을 좀 더 잘 살아내기 위함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본인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 간의 노동 환경을 적응하는 방식과 소통하고 동료 간 연대 및 의지하며 그 노동을 해나가고 있었다. 단편적으로 단지 '운전하는 사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들 역시 우리가 좀 더 바라보고 환대해야 할 다양한 종류의 '투명인간'중 한 무리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다시금 육체노동과 그 현장에 대한 존경심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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