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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틀런드 러셀 - 1. 게으름에 대한 찬양
    Entertain contents/책 2019. 6. 4. 02:23

    겨울서점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됐다. 반신반의했지만 철학에 대한 관심으로 기꺼이 사 보았다. 결과는 대 만족.

     

    '만일 사회를 현명하게 조직해서 아주 적정한 양만 생산하고 보통 근로자가 하루 4시간씩만 일한다면 모두에게 충분한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고 실업이란 것도 없을 것이다.' p-24

     

    공감한다. 누군가에겐 충격이겠지만,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이 일하고 있다. 굳이 그렇게 일하지 않아도 세상은 잘 돌아갈 것이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되찾고 사회에 생기가 돌 것이라고 본다. '노동 독점'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노동현장은 부익부 빈익빈만큼 노동시간 양극화가 심각하다. 그것이 빈부격차와 관련이 없지 않을 수 없다. 모두들 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 공기업의 노동시간은 매우 길다. 그들의 노동시간을 줄여 고용을 늘린다면 일자리 문제와 삶의 질, 양극화 문제, 이렇게 바로 보이는 세 가지의 중요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부수적인 크고 작은 장점들도 많을 것이다. 

     

    '과거에는 속편하게 노는 것에 대한 수용력이 있었다. 그러나 능률 숭배로 인해 그러한 부분은 사라져 버렸다. 현대의 인간은 모든 일이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일하는 법이 없다.' p-29

     

    그렇다. 왜 속편하게 노는 것이 불경스러운 것으로 여겨져야 하는지, 돈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덧없게 느껴져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지점에서 마주한 부분이다. 의미 없이 시간을 때우는 것을 더 격렬하게 해야 한다. 목적이 있어야만 무엇을 하는 것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분명 누군가의 의도로 그렇게 생각하게끔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신주가 말했던 요즘의 우리는 돈이 되지 않는 일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과 오버랩되며,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도덕적 자질 가운데서도 선한 본성은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자질이며 이는 힘들게 분투하며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과 안전에서 나오는 것이다.' p-33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을 많이 하면, 피곤하다. 러셀에 따르면, 피곤하면 판단이 흐려진다. 감정 통제가 어렵다.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우리는 그래서 잠을 자야 한다. 잠을 자려면 일을 덜 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노동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휘황찬란한 복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잠이 필요한 것이다. 편안함과 안전은 일을 덜 하고 여가시간이 늘 때 가질 수 있는 가치다. 선한 본성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사회를 만들려면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노동 시간을 줄여야 한다.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어떻게 보면 현대 세계의 획일화를 조장하는 가장 큰 요소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 영향력이 미국 내에 그치지 않고 소련을 제외한 세계 전 지역들로 침투되기 때문이다. (중략)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영화는 미국 중서부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할리우드식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해낸다. 사랑과 결혼, 출생과 죽음에 대한 우리의 정서들이 이 조리법에 따라 규격화되어 간다. p-110

     

    획일화는 늘 경계해야 한다. 남자라고, 여자라고 해서 다 그런 것이 아니다. 진보주의자라고 해서 모든 분야에 대해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는 건 오산이다. '진보적인'이라는 말도 각자의 기준이 다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획일화 되는 세상에 대해 더 경계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삶에서 원래 그랬던 것이라는 게 있을까? 대부분의 삶의 양식, 문화, 사고방식은 어디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나라가 만들어질 때 영향을 가장 많이 준 곳에서 오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나라다. 여전히 친미주의자들이 있고, 과거 남-북 분단 초기에 미국의 보호 아래 국가의 틀을 갖췄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미국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곳이 됐다. 이에 더해 일제시대를 거치며 일본이 남기고 간 건축물, 문화, 사회 시스템도 무시할 수 없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미국과 일본의 세계관이 뒤섞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을 걷어내는 작업은 지난하다. 지역별로도 다르고, 사회 계층별로도 다르다. 연령대 별로도 다를 것이다. 각자의 삶의 방식이 더 달라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좋게 말해 좋은 것은 남기고 나쁜 것은 없애야 하겠지만, 여전히 득세하는 친일 잔재 무리들과 사회병리현상을 방관하며 탐욕만을 추구하는 기득권이 남아 있는 이상, 쉽지 않은 일이다. 그들은 좋은 것은 외면하고, 나쁜 것을 남기려 여전히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박노자 선생이 말했던, 여전히 남아 있는 친일, 친미주의자들은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일본과, 또는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할 때 그들에게 떨어지는 콩고물이 여전히 있기 때문에 권한을 가진 위치에서 전체 국민들을 위한 결정을 하지 '않는'것이라고 했다. 십분 공감한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을 인생을 대통령이 바뀌고, 국민들이 바뀌었다 한들 쉽게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이해는 하지만 그것이 나쁜 짓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정신 차리게끔 해주는 수밖에는 없다. 

     

    '만일 당신이 많은 사람들이 말이나 개에 대해 가지는 애정처럼 조건 없는 애정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한다면 아이들은 당신의 제안에 쉽게 반응할 것이고 금지 사항들도 쉽게 받아들일 것이다. 물론 다소 투덜거리긴 하겠지만 분노는 품지 않을 것이다.' p-130

     

    맹목적인 사랑은 있다. 있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그렇고, 연인에게도, 심지어 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에게도 그렇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 역시 목적으로 대해서는 좋지 않다. 특히나 사람은 물질인 돈과 달리 감정이 있다. 다 안다는 뜻이다. 나를 목적으로 대하는 누군가의 의도를 눈치챘을 때 느끼는 분노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사랑은 삶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요소 중 거의 최우선이라고 본다. 따라서, 맹목적인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을 때 잠깐 멈춰서 무엇이 나를 자유롭게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 외에도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차고 넘치는 책이다. 더 놀라운 건, 이 책이 출간된 해는 1935년이라는 것인데도 불구, 지금 시대에 맞춰 이해를 하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심지어 4차 산업혁명의 페러다임에도 어울리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이 왜 철학인가를 알게 해 주는, 러셀의 진가를 느낄 수 있는 책이어서 좋았다. 촘스키와 푸코 말고는 제대로 이해하는 철학자가 없었던 때, 단비 같은 러셀의 글은 이후의 삶의 촉매제가 될 것이다. 아직 더 읽어야 할 그의 책이 많이 남았다는 점에서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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